1104동 10층 소박한 추석잔치 이야기



한숙자 통장님과 첫 만남


이번 추석잔치는 각 아파트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박하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1104동 한숙자 통장님이 생각났습니다.

연초부터 몇번 만나오면서 통장님과 이 일을 의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장님께서 여러 일정으로 바쁘셔서 어렵게 약속을 정했습니다. 

손혜진 선생님과 함께 복지관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통장님, 이번 추석 때는 이웃과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금씩 재료를 준비해서 전을 부쳐 먹으면 어떨까요?"


"이런식으로 해본 적은 없는데 복지관에서 제안하니 한 번 준비해볼게요." 


통장님께서는 일도 나가시고 통장 역할로 여러 일정도 있으셨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부담을 드리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복지관 일로 받아들이시기보다 이웃과 정겹게 음식 나눠드시는 일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함께 하실만한 분 찾기 


며칠이 지나고 소박한 추석잔치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한숙자 통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다음부터 이렇게 못하겠어요. 

혼자 이것저것 준비하려다보니 할게 많아요.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통장님께서 여러 이웃들에게 부탁드려 준비하실 줄 알았는데 버거우셨던 겁니다. 

미리 먼저 잘 여쭙고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살폈어야 했는데 놓쳤습니다. 



통장님께 함께하실 만한 분을 찾고 연락드리기로 했습니다. 


1104동에 사시고 주민모임 '마실' 활동을 하고 계신 김종수 반장님이 생각났습니다. 

때마침 마실 모임을 하고 있던 담당자 권민지 선생님께 전화드렸습니다.

김종수 반장님께 추석잔치를 설명하고 함께 해주실 수 있는지 의논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시 뒤에 권민지 선생님께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김종수 반장님께서 함께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1104동에서 명절잔치 함께 하실만한 분도 소개해주시고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함께 보태주시기로 했어요." 


'마실' 모임이  끝나는대로 김종수 반장님을 복지관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한숙자 통장님께 전화드리니 김종수 반장님께 전화를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할만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김종수 반장님께서 추석잔치를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김종수 반장님과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맺어온 권민지 선생님 덕분입니다. 


1104동 10층 소박한 추석잔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파트에 가득 퍼지는 고소한 부침개 냄새 


출근해서 통장님께 전화드렸습니다. 


"통장님, 추석잔치 준비 잘 되어가시죠?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준비 거의 다 했어요. 지난 주에 이야기한 부침가루만 지금 갔다주세요."


보해마트에서 나눠주신 부침가루만 갔다 달라고 하신 겁니다. 



통장님 집으로 부침가루를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통장님께서는 주민센터에 잠시 가셨고 

다른 층에 계시는 이웃 분이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김치 양파 당근 부추 호박 오징어 고추 등 여러 재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김종수 반장님께서는 오징어와 식용유를 준비해주셨습니다. 

후라이펜과 버너도 같은 층 이웃들에게 빌리셨습니다. 


잠시 뒤 약속한 11시에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복지관 일을 마무리 하고 다시 1104동 10층을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앞에서 전을 부치는 이웃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첫 모습만으로도 정겹고 따뜻했습니다. 


통장님과 반장님께서 좋은 이웃을 소개해주신 덕분에 준비하는 일손이 넉넉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분의 아름다운 미소만큼, 부침개 냄새도 아파트 가득 퍼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가 부침개 부치는 모습을 보고 들리신 분

부침개 냄새를 맡고 직접 찾아 오신 분

통반장님이 전화해서 방문하신 분

흥겹게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고 찾아오신 분까지. 


오시는 분마다 통장님께서 인사 나누셨습니다. 

원래 잘 아셨던 이웃도 계셨고, 이번 기회에 이야기 나누신 분도 계셨습니다. 



하우정 선생님께서 다음 날 추석잔치를 하기로 한 13층 원청재 님을 모셔왔습니다. 

부침개 반죽은 많은데 버너가 부족하니 당신 집에서 버너, 후라이펜, 뒤집개를 가져오셨습니다. 

익숙한 솜씨로 금새 부침개를 부쳐내셨습니다.




관장님, 부장님께서도 응원차 방문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직접 부침개 부치는 일도 도와주셨습니다. 

통반장님을 응원해주셨습니다. 


 

자리에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눴습니다. 

24년 전 아파트가 세워진 이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런 잔치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주택이었면 골목길 풍경이지 


통장님 옆 집은 마침 도배 장판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집 안에 모든 살림을 꺼내고 기술자 분들이 일을 하시니 자연스럽게 밖에 나오셨습니다. 


맛있는 부침개가 부쳐지자 아저씨께서는 잠시 어디 다녀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잠시 후에 올라오신 아저씨 손에는 막걸리 3병이 있었습니다. 



직접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눠주시며 인사하셨습니다. 

도배 장판 기술자 분들도 잠시 쉬며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내가 여기에 산지 24년인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야. 

주택으로 따지면 골목길 풍경이지. 

사람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 나누니 좋아." 


흥겨웠습니다. 

그렇게 이웃 분들은 서로 이야기 나누셨습니다. 

엘리베이터 앞 부침개가 서로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시간이 마중물이 되어 이후에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나시리라 믿습니다. 




집집마다 배달합니다 


부침개를 포장해서 가져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니 같은 층에 살면서 오지 못하신 이웃 분이 생각나셨나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10층까지 오시기 버거운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1호, 3호, 4호, 9호, 15호는 갔다드려야 하는데 대신 갔다줄래요?"




먹는 역할만 하던 저에게 심부름이 내려졌습니다. 

하우정 선생님과 함께 1층을 다니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8호 할머니 심부름으로 왔어요. 

10층에서 부침개 만들고 있는데 꼭 갔다드리라고 하셨어요."


4호 아주머니는 부침개를 받고 그 길로 10층으로 올라오셨습니다. 

8호 할머니께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부침개 20장 정도 부치셨습니다. 

부침개 한 장 받고, 부침개 20장 부쳤습니다. 

수지타산이 안맞는 일인데 이웃들이 나누니 함께 참여하신 겁니다. 





복지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11단지 관리사무소가 생갔났습니다. 

통반장님께 관리사무소에 부침개를 갔다드리면 어떨지 제안했습니다. 


"지금 전화했는데 소장님과 과장님은 다른 회의에 갔대요. 

다른 직원 분들도 있으니 포장해서 갔다드리면 좋겠어요."


제일 예쁜 모양으로 맛있게 된 부침개를 고르셨습니다. 

반장님과 함께 관리사무소에 방문했습니다. 


"10층 통장님과 이웃들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으려고 부침개 부쳤어요. 

관리사무소 직원 분들과 나눠먹으려고 가져왔어요."


추석잔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반장님께서 직접 설명하셨습니다. 

입주자 분들이 관리사무소에 대접하셨습니다. 





아파트 층마다 관계가 보입니다

추석잔치를 풍성하게 잘 마쳤습니다. 

주민이 준비했고, 주민이 진행했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추석잔치를 함께 하실만한 분을 찾아가 부탁만 드렸습니다. 

잔치 날에는 인사하고 먹고 사진 찍는 일만 했습니다. 

편안했습니다. 



추석잔치를 하다보니 관계가 보입니다. 


같은 층 사람을 일일이 챙기셨던 반장님께서는 

24년을 사시다보니 같은 층 이웃들의 상황을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1호에 사는 분은 요양보호사가 몇시에 왔다가 몇시에 가는지

9호에 사는 분은 자주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새롭게 이사오신 분도 있고 친하지 않아 아직 말을 섞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누가 몇호에 사는지, 몇호에 누구가 어떠한지 대략 알고 계셨습니다. 


11단지 1,000세대가 넘는 규모에서 

이렇게 아파트 입주자 분들의 관계를 알아가는 일이 가능할지 생각했습니다. 


이번 추석잔치를 하다보니 

마당발 홍반장 같은 분 몇 명만 알고 있으면 

그 층의 상황이 어떠한지

그 동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추석잔치 이후에 아파트를 부지런히 다니며 

여러 주민을 만나 인사하고 묻고 만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동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방향성을 세웠으니 

이렇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니 관계가 보입니다. 

관계가 보이니 더 만나고 싶어집니다. 

만나다보면 동네에서 해야 할 일도 보이겠지요. 

그 일도 주민과 함께할 겁니다. 


(글쓴이 : 권대익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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